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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 학생을 둔 부모라면 교육에 가장 관심을 많이 가지고 계실 겁니다. 대학을 가서도 회사에 들어가서도 끊임없이 해야 하는 것이 배움이고, 배움의 끝엔 항상 평가가 있습니다. 자격증이던 스펙이든 간에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문제는 상대평가입니다. 교육은 절대로 무조건 절대평가이어야만 합니다.

저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 전반에 걸쳐서 불만이 많은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그 많은 연구 인력과 자원과 예산을 가지고 왜 그것밖에 못하는지 너무 궁금한 사람입니다. 교육이 나라의 백년지대계 라고 생각한다면, 절대로 지금과 같이 할 수 없을 텐데 말입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그럴 거라 생각이 됩니다. 제가 가진 가장 큰 불만이라 하면, 교육이 상대 평가라는 것입니다. 왜 교육이 상대 평가가 되어야 하는지 저는 진짜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변별력이니, 차별화니, 등수니 하는 말도 안 되는 걸로 아직 너무 어린 학생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이 상황이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1. 교육은 절대 평가이어야 한다.

절대평가의 가장 쉬운 예는 운전 면허증 입니다.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서는 정해진 필기시험을 보고, 코스 주행과 도로 주행 시험을 봅니다. 자동차 조작법과 도로 교통법을 알면 시험에 패스할 수 있고, 대한민국의 도로와 한국과 협약이 맺어진 다른 국가에서도 운전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근데 지금 한국의 교육을 운전먄허증에 비교를 하면, 우리는 이번달에 10명만 선발해서 면허증을 줄 겁니다. 그 10명을 선별하기 위해서, 킬러 문항과 레이싱 보너스 포인트, 협곡운전 및 오프로드 운전 실력을 평가할 겁니다. 등등의 말도 안 되는 변별력을 위한 필요 이상의 것들로 10명을 추려 내는 일들이 얼마나 필요 없는 에너지 낭비 인지를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운전 면허증의 본질을 생각하고, 그 능력을 갖춘 모든 사람이 절대평가의 기준으로 자격증을 받는게 당연하다. 어떻게든 면허증을 따려고 기를 쓰고 노력하는 문화가 아니라 면허를 따서 앞으로 뭘 할지를 고민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상대평가를 통해 운전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하는 사회가 아닌 절대 평가의 기준을 정해서 그에 부합하면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 

학생들도 초,중,고 과정에서 배우고 알야 할 정도의 수준의 교과 과정을 수업받고, 그 수준을 통과를 하면 졸업을 시켜주는 제도면 그걸로 충분하다. 더 많은 공부를 위해 대학을 가고 싶고, 상위학교로 가고 싶으면 고등학교 졸업장만 있으면 입학이 가능해야 한다. 시험을 통과하여 고등학교의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 외국의 대학

외국의 대학은 1학년은 대체로 학생수가 무지하게 많다. 입학은 조금 더 수월한 편이기 때문이다. 내가 유학한 학교는 대학 입학 시에 교수와 1:1 면담을 한다. 그 많은 입학 예정자들을 다 인터뷰한다. 서류 접수를 하고 점수가 높던 낮던 모두 교수와 한두 마디를 나눈다. 너는 수학을 잘 못하는데 기계공학과에 들어와서 뭘 어떻게 하려고? 열심히 해서 따라갈게요. 그러면 1학기때까지 수학을 통과하는 조건으로 입학 허가, 뭐 이런 케이스들이 일어나는 곳이다.

그래서 1학년 교실에 가면 2~3백 명의 학생들이 있다. 유급한 학생부터 이제 막 들어온 신입생까지.. 이 사람들이 시험을 봐서 통과를 해야 2학년, 3학년, 4학년 올라간다. 물론 올라갈수록 공부는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고 어려워지고 학생은 10분의 1도 안되게 줄어 있다. 진짜 공부를 하려는 애들만 남아 있다. 졸업을 하려면 등수가 아니라 시험을 통과를 해야 한다. 100명이던 200명이던, 그 시험만 통과하면 졸업을 할 수 있다. 졸업장을 받은 것만으로 기업에선 이 사람의 자격을 확인한다. 석차나 학업 성적을 중요하게 보진 않는다. 회사에서 기본적인 업무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성적보다는 사회성이며, 문제 해결 능력이며, 이는 인터뷰를 하면서 가려내야 할 문제이지 성적표에 적혀 있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3. 절대평가를 해야 하는 이유

간단하게 누구든지 상식을 가진 사람이면 이해 할수 있다. 상대평가를 하는 순간 누구도 누구를 돕지 않는다. 스터디 그룹이던 뭐던 누군가에게 공부를 가르쳐 준다거나, 필기한 걸 빌려준다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을 거다. 옆사람이 잘되면 난 피해자가 된다. 하지만 절대평가를 하면 서로 도와주고 알려주고 하는 문화가 가능하다. 더 많은 지식이 공유되고 시너지가 발생한다. 

전교 1등이고, 이미 필요한 지식을 대부분 다 아는 학생은 나머지 1%를 더 알기 위해 밤을 새우지 않아도 된다. 그 시간에 내가 알지 못했던 교과 외의 학습, 혹은 문화생활, 스포츠, 여행, 등등을 할 수 있다. 봉사활동을 하던 뭘 하던 그 시간에 쉬면서 그 머리 좋은 전교 1등이 창의력과 이타심도 키워 줄 수가 있다. 근데 그 빌어먹을 상대 평가를 하면, 전교 1등이 2등이 되는 순간 어떤 이는 자살도 하고, 과로해서 쓰러지기도 하고, 더 불행해지는 경우가 생긴다. 1등과 2등을 갈라서 뭐 할 건데? 1등도 2등도 모두 훌륭한 대한민국의 인재이다. 쉼을 통해 내가 진정하고 싶은 게 뭔지 생각도 하고, 더 큰 비전을 갖게 되어야 할 나이에, 문제집이나 더 풀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 

이런 상대 평가로 1,2등을 가리고, 그 평가를 진행하는 기관이나 기득권층이 생겨나고, 기득권층이 그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비 기득권층은 점점 더 두꺼운 유리천장을 경험하게 된다. 

한국 안에 있는 작은 우물을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지 말고, 더 큰 물로 나가서 싸울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고 수많은 기회와 도전의 길을 열어 줘야 한다. 한 문제 더 맞히려고 의미 없는 경쟁을 하지 말고 과학자가 될 사람이라도 평가와 상관이 없는 인문학이던 사회학을 두루두루 볼 수 있어야 한다. 머리 좋은 엘리트들을 시험 잘 보는 기계로 만들지 말자. 이들이 잘 성장해서 미래에 한국의 빌게이츠,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 

중고등학교 때 등수로 석차로 혹사시키고, 어떻게든 편한 곳으로 가서 안주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는 교육제도는 도대체 어기서 온 건지... 머리 좋은 엘리트는 그 머리를 더 큰 곳에 사용할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가 지원을 해야 한다. 등수 정하지 말고 더 많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모든 길을 열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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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통령 입후보 와 선거

조금 다른 이야기 인데, 이것도 어찌 보면 절대 평가와 상대평가의 덫에 빠진 한국의 문제이다. 정치.. 이 또한 절대 평가가 되어야 한다. 나라의 국익을 위하여 좋은 정책을 낼 수 있는가? 의 절대적인 잣대를 통과한 사람이라면 정치판에서 국익을 위해 싸워야 한다. 누가 당선이 되더라도 국익과 국민의 삶은 개선이 된다라는 전제 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만 누가 되면 과학 쪽에서 국익 실현을 중점적으로 하고, 다른 누가 되면 농업 쪽에서 국익을 실현하는 정도의 차이 이어야 한다. 둘 중에 표를 많이 받은 사람을 뽑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른 상대 평가로 당선인이 결정되는 이 문화도 지금까지 많은 문제를 보여줬다. 다만 다수의 표를 받기 위해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고, 정책의 싸움이 되지 못하는 게 바로 그것이다.

정책으로 싸우고, 국민이 그 정책이 맞다고 생각하여 표를 준다면, 2위나 3위를 한 정치인일지라도 그 정책을 펼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1위가 독식하는 이 선거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 

왜 이토록 1위, 경쟁구도를 좋아 하는지 모르겠다. 사회가 다 망가지는 이유인 듯한데 왜 바꾸지 않는가?

카르텔이던 이기주의던, 이권, 기득권 등등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을 텐데, 여당이던 야당이던 누구 하나 개혁하려는 사람이 안 보이는 게 안타깝다. 사회 전반으로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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